일상

시(詩) 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인

팔팔구구 2023. 1. 24. 20:21
반응형

「사평역에서」 시를 읊어보아요! 

 

시인 곽재구는 1954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전남대 국문과,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평역에서」는 곽재구 시인의 첫 시집으로, 인간의 그리움이나 외로움 등을 우리네 삶의 애환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골의 기차역을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작품 속의 간이역은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우울하고 어두운 삶의 공간이면서도 따뜻하고 평화로운 감정의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 

 

 

 

「사평역에서」는 곽재구 시인이 20살 때 느꼈던 감정을 시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사평역은 실제로 있는 역은 아니고, 남광주역에서 영감을 얻어 배경으로 하였으며,  대합실이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공간을 영상에 담아 놓은 듯 묘사하고 있다. 

「사평역에서」는 80년대 이후 대표적인 서정시로 자리매김했으며, 임철우가  「사평역」이라는 이름으로 단편소설을 썼다.

사평역에서 시집   창비출판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0년대 간이역 대합실의 정경이 시를 읊는 내내 선하게 그려지는 정겨움이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그림 그리듯이  디테일하게 묘사해 상상 속의 저 간이역에 내가 같이 있는 듯함을 느꼈다. 

 

하얀 눈 송이, 보라 수수꽃, 청색 손바닥, 타오르는 불꽃, 단풍잎 등 색감을 따라 시의 이야기를 풀아가는 것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추운 겨울이면 내 손바닥도 청색이 되는데 타오르는 불꽃에 가까이 쬐며 낭만을 즐기던 때도 생각이 나는 시여서 더 좋다. 

 

 

 

 

반응형